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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 The Past

 이리와 나를 꼭 안자. 

오늘을 살아내고 우리 내일로 가자.

- 새소년 ‘난춘’-

가사 없는 Playlist | 파도 치는 봄 (난춘 1시간 반복 + 파도소리) (youtube.com)







 그 날을 떠올린다.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날. 

 카라얀은 함박웃음을 매달고 크게 소리쳤다.

“제니아-!”

“아, 너구나? 왜 그렇게 뛰어오고 그래?”

티 없이 맑은 얼굴로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주고받았던 일주일이었다. 짧지도, 그다지 길지도 않은 정도의 시간. 평생을 외로움 속에 살았던 그가 마음을 열기에는 충분했던 날이었다.

“곧 비가 오잖아. 난 찝찝해서 비가 싫어.”

“난 좋아해. 안 그래도 심심한데 이정도는 와 줘야 물놀이라도 하지. 그러니까 내가 이번 달에는 바다에 놀러 가자고 이야기했잖아.”

“갈 시간은 있고?”

“웃기지 마. 난 원고 다 끝냈어. 네가 바쁜 거겠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두 사람이 섞여들었다.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고 희게 웃는다. 우산하나에 사람이 둘. 비좁은 공간을 두고서 티격태격 울리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넌 너무 심술 맞아. 왜? 이 정도면 착한 거 아냐? 양심 없기는.

아, 비 온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얼굴이 흘러내린다. 글자로 이루어졌던 몸뚱이가 허물어진다. 

입이 있던 자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 가님. 왜, 그렇게- 바라… 봐?”

 

까만 빗줄기가 웅덩이를 이룬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잉크 더미 사이에 카라얀은 홀로 서 있었다. 새하얀 눈썹 사이를 물줄기가 파고들었다. 힘없이 떨어진 팔 아래 우산이 철퍽,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인파로 가득했던 세상이 조용히 침잠했다. 빗소리에 섞여 시끄럽게까지 느껴지던 웅성거림은 멎고 새까만 세계속에 사내는 홀로 서 있다.

‘왜?’

왜 매번 다들 사라지는 걸까. 망할 비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데려간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물든 장갑 사이로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상실의 고통은 늘 새롭게 아릿하기만 하다.

그가 만들어 낸 환상은 사라지고, 원래 알던 모습으로 시간이 되돌아갔다. 글자로 이루어진 고양이가 바짓단을 부비고 뭉개졌다. 그가 맡은 배역은 여전히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아닌 ‘작가’였으니 무엇도 가질수 없었다.

새로 창조하고 떠나보내기를 반복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만 해. 그만두자. 그만해야 해. 

'그만-! 그만 생각해!'

 

분주한 발걸음이 비틀거리며 익숙한 장소를 지체없이 따라간다. 벽돌 사이를 짚은 구둣발이 크게 휘청였다. 두려움에 잠식된 귓가는 물에 잠긴듯 먹먹했다. 좁은 골방, 낯익은 침대. 차가운 공기와 이웃집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차가운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러 셔츠를 적셨다.

‘나는 살아있는 게 맞는가?’

낡아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이 물을 먹어 썩은내가 났다. 이대로 두고 잠들면 고생할 걸 알면서도 눈을 감았다. 던져버린 몸뚱이가 무겁고 뜨거웠다. 어차피 처음으로 되돌아갈 테니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나를 두고서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울고, 웃고, 화내고, 경멸하고, 통탄스러워 악을 써도 아무렇지 않게 건너편의 집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지?’

매일매일 채웠으나 돌아가는 수첩에는 크게 이름이 하나 쓰여있다.

카라얀, 멋있네! 그게 네가 지은 이름이야?

그럼-. 난 제니아로 하자. 

나는-.

작게 속삭이던 목소리는 고른 숨소리로 변해간다. 회색 하늘 위 떠있는 새하얗고 강렬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사람과 마주할 땐 얼굴을 마주보고 글씨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 손을 두드리는 건  멀쩡한 형태를 짐작하기 위해서. 습관처럼, 불안할 때면 더더욱 그랬다. 

몇날 며칠을 지나며 소극적이었던 행동이 달라진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처음 마주한 거대한 자연이 나그네들을 다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라고 소리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가끔은 치밀어오르는 불안감에 주변을 보는게 고작이었다. 

카라얀은 수첩위에 각자 다른 필기체로 적힌 글자들을 매만졌다. 억지로 이어 붙여놓은 정신상태로는 살수 없을 것만 같아도 사람이란 강인하다. 이별을 수없이 반복한 이후 더는 '사람'이란 글자는 쓰지 않았다. 이름도 마찬가지였으며 주변에 모든 관심을 껐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제가 알려준 이름을 불렀다. 

 

“반가워, 카라얀. 앞으로는 얀이라고 불러도 돼?”

처음으로 가진, 진짜 친구들이 정말 좋았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애정과 경험들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해서. 카라얀이란 이름이 좋아졌다. 

‘작가 1’이 아닌 내 이름이.



 처음엔 부정, 그다음엔 회피. 마지막엔 수긍. 카라얀은 천천히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단 사실을 받아들였다. 

같은 숙소에 머물던 누군가가 말했다.

“너랑 나랑 되게 비슷한 것 같아.”

입안이 썼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생각이 비수가 되어 찔렀다.

‘아닐 걸. 난 겁이 많아서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을 뿐인데.’

 

다정했던 단발머리 친구와 미래를 기약했다.

“무척 그리울거야.” 

카라얀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나도. 사실은 네가 그리울거야. 보고싶을수도 있겠지.’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타인의 얼굴은 어땠지.

언제까지 환상만 쫓으려고 그래? 현실에서도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게 좀 더 낫지 않겠어?”

 

비로소 받아들인 현상은 꿈과 같은 것이라 코가 시큰했다. 구석에 한참을 박혀 곱씹고 더듬다가 가까스로 현재를 인식했다. 

처음 보았던 푸른 하늘을 기억한다.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포말과 쌉싸름한 공기. 아름다운 햇빛을 잊지 못한다. 내리쬐는 터질듯한 백야가 아닌 다정하게만 보였던 끝이 없던 지평선.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잘 자. 내 친구!

저는 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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